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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화 <파수꾼>을 보고. (등장인물/내용/감상)

by nspiceno1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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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개봉했을 때 이 영화를 대학로 CGV까지 가서 봤던 기억이 있다.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되었고, 저예산 영화인 탓에 한 때 CGV에서 저예산, 인디 영화들을 위해 상영관을 따로 마련했던 프로젝트(?) 무비꼴라주 상영관에서 상영했기 때문에, 비가 많이 왔던 날 굳이 대학로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음. 그 때는 좋은 작품들에 대한 열정이 있었군.)

무튼 그 이후로, 한번씩 생각나서 주기적으로 다시 보곤하는 이 영화.

 

영화 파수꾼

 

<파수꾼> (2011)

감독 : 윤성현
출연 : 이제훈 박정민 서준영 조성하

 

등장인물

 

기태 (이제훈)

기태는 외롭다. 혼자인 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목받고 싶다. 

주목받고 싶어서 쎈 척도 하고 허세도 부리는데... 어? 생각보다 잘 먹힌다. 아이들이 따른다.

많은 아이들이 '왕' 모시듯 따르는 기태지만 기태는 알지 못한다.

쎈 척 허세부리는 것, 군림하는 것으로 우정과 관계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엄마의 부재는 기태의 결핍을 넘어 치부다. 누가 자신의 치부를 건드리면 참을 수가 없다.

무리의 아이들이 엄마 이야기를 하다 자신의 눈치를 보며 수근거리는 것을 보며, 기태는 거의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안 계시잖아, 엄마가. 아무도 없어, 그 정도야. 그 정도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우리집 관련된 얘기야. 됐지?"

자신의 잘못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친구 둘과 사이가 멀어지게 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한다.

 

희준 a.k.a 베키 (박정민)

수더분하다. 얼핏 보면 어떻게 저렇게 순하고 무던한 애가 기태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극 중에서 셋이 친구가 된 계기는 언급되지 않지만, 아마도 세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립적인 캐릭터인 동윤과의 어떤 접점으로 인해 친분이 이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는, 나 혼자만의 생각)

주로 기태와 동윤이 하자는대로 끌려다니는 듯 하지만, 사실상 기태에게 있어서는 절대적 우정의 존재다.

마음의 크기로 치자면, 희준이 기태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기태가 희준을 생각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큰 것이다.

기태가 자신의 위에서 군림하려 들자, 이를 견디지 못하고 전학간다.

 

동윤 (서준영)

세 사람 중 가장 '중간'의 범주에 있는 인물이다. 서글서글하고 성격도 좋으며 예민한 구석도 없다.

기태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현재는 혼자만 반이 다른 관계로 두 사람의 균열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기태와 희준이 점점 멀어지자 희준의 편에 선다.

또한, 자신의 여자친구가 기태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자 기태를 완전히, 잔인하게 끊어낸다.

 

내용(줄거리)

 

폐역사에서 공을 던지고 치고, 주우러 다니며 우저을 다시는 고등학생 기태와 희준, 동윤.

얼핏 보기에 세 사람은 너무도 달라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단단하게 뭉쳐 우정을 다진다.

기태가 아끼는 닳대로 닳은 야구공을 찾기 위에 폐역사의 온 수풀을 헤치고 다닐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것들을 지켜주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여느 관계가 그렇듯 세 사람 사이에도 위기는 찾아온다.

그리고 또 여느 상황이 그렇고 그렇듯 세 사람의 입장에서 모두 타당성은 있다. 

 

희준은 슬슬 빈정이 상한다. 자신은 보경을 짝사랑 하는데, 보경은 기태를 좋아한단다. 이건 물론 기태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걸 희준 역시 누구보다 잘 알지만, 자꾸만 자신을 아랫 사람 취급하고 친근감을 가장해 하대하는 기태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기태는 답답하다. 누구보다 희준과 보경이 잘 되기를 바란 건 자신이었는데. 보경의 마음까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자꾸만 자신을 멀리하는 희준이 서운하다. 또한 다른 무리들과 어울려 자신에 대해 수근거리는 (가정 환경에 대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희준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동윤은 어이가 없다. 한번씩 와 보면 기태와 희준은 죽일듯이 싸우고 있고 (싸운다는 표현보단, 기태가 일방적으로 희준을 줘패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기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지 않냐'며 씩씩거리기 바쁘다.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 시키고 싶은 동윤이지만, 동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여자친구인 세정에 대해 이런 저런 소문을 전해주는 기태를 완전히 떨쳐낸다.

세 사람은 각자 그렇게 멀어진다. 애가 닳는 건 기태 뿐이다. 

묘하다. 이 관계의 모든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은 기태처럼 보였는데, 서로가 등을 돌릴 때에, 가장 아무 힘도 없는 것이 기태인 것이다.

'너까지 나한테 그러면 안 돼...' 라고 마지막 호소를 하던 기태는 결국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관계를 마무리 짓는다.

어쩌면 이 관계의 주도권을 끝까지 자기가 가져가고 싶어서였을까.

 

감상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학폭, 일진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이다.

학폭이야기고 일진 이야기면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명백히 갈려야 하는데, 이 영화속엔 완전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자인 것이다.

희준이 기태한테 폭력을 당하지 않았느냐고?

물론 그것도 맞지만 희준 역시 기태와의 관계를 통해 편안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교실 안 기태와의 다툼에서  '너랑 있으면 뭐라도 된 것 같으니까 있는 거지. 쟤네가 널 진정한 친구로 생각할 것 같으냐'고 묻는 희준의 대사에서도 어느정도 인정되는 부분이다.

 

"너 나 친구라고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냐? 저 새끼들 다 마찬가지야. 너 친구라고 생각해서 옆에 있는 거 아냐, 착각하지 마. 너 친구 아무도 없어. 나도 너 친구로 생각해 본 적 없고."

그저 지극히,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기태는 타인의 위에서 군림할 줄은 알지만, 정작 타인과의 '동등'한 관계는 어떻게 지속시켜 나가야 할 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늘 화가 나고 욕부터 나온다.

"미안해. 내가 잘 못했어. 네 기분 충분히 이해해" 한 마디면 될 상황에 욕부터 나간다.

나중엔 정말 희준과 동윤을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진심어린 사과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싸우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다. 참. 투박해서 안쓰러운 인물. 기태다.

 

이 영화가 잠시 모호해지는 것은, 가해라고 볼 만한 행동은 모두 한 기태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작 얻어맞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동윤과 희준이 오히려 가해자처럼 둔갑하고 죄책감을 느껴야 하며,

뒤늦게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설쳐대는 기태 아버지의 부름에 호출 당해야 한다.

희준이 전학 후 기태에게 선물 받았던 '기태에게 소중한 야구공'은 이제 폭탄 돌리기처럼 희준을 지나 기태에게까지 주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동윤은 혼자 폐 역사에 남아 기태를 회상하며 "네가 최고다, 친구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죽음은 이렇게 모든 것을 용서하고 미화하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가해자/피해자를 나눌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한 사람'을 마음속에 지니며 살아간다.

친구 여럿이 있어도, 다섯명 여섯명이 함께 무리지어 놀아도 그 안에서 유독 친밀감을 느끼는 한 사람이 있는 것 처럼.

기태에겐 그게 희준이였고, 또 동윤이었다. 둘이 아니면 누구라도 상관이 없었다.

 

이는, 마지막에 기태 무리에게 얻어맞는 희준을 구하며, 기태가 자신의 위해 싸워준 아무개 친구들을 향해 찰진 욕을 쏟아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절대적인 그 무엇이 충족될 수 없으니까,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까. 한없이 미숙하고 나약한 기태는 결국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에게, 그 어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던 것처럼. 스스로를 한없이 코너로 몰고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기태 자신이다.

 

 

"동윤아 미안해. 부탁이니까 이러지마라. 너까지 나한테 이러지마. 진짜 제발. 내가 어떻게 해야 돼?"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줄 사람 나 뿐이라고 지껄일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 줄 알아? 단 한번이라도, 내가 네 진정한 친구였다는 생각 하지마라. 생각만 해도 역겨우니까. 네가 역겨우니까 네 주변 애들도 다 떠나는 거야."

 

 

아직까지 관계의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나는 것을 보면,

나도 아직 많이 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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