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한 이래, 나는 꾸준히 왁싱을 하고 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을 때엔,
"그게 굳이 민망함까지 감수하고 돈 까지 들일만큼 대단한 거야?"
생각했는데...
와 역시 인간이란...
한 번 시작하고 나니,
수십년간 늘 그자리에 나고, 자랐을 털들이
왜 그렇게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던지...
오늘도 왁싱샵 침대 위에 다소곳이 누워있던 나.
"여기는 좀 아파요~"
앞으로의 통증이 어떤 강도인지, 수치로 따지자면 어느정도인지
매번, 잊지 않고 설명해 주시던 친절한 원장님은,
내가 그 어떤 고통에도 눈만 꿈벅거리며 천장을 본다든가,
심지어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는 것을 보더니,
"고객님은 아픈 걸 되게 잘 참으시는 것 같아요"
말씀하시곤 웃는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참고 있는건가?'
아닌데, 진짜 안 아파서 가만 있었던 건데.
하긴. 아닌게 아니라 내가 모든 통증에 있어서 좀 둔감한 편이긴 하다.
주사를 맞을 때, 심지어 그 굵은 주사 바늘이 내 혈관에 그대로 꽂히는 걸 보고도,
미끄러운 빙판길에서 보기좋게 전신이 미끄러졌을 때에도,
무거운 운동기구가 내 등 위로 쏟아져내렸을 때도,
심지어 킥보드 타고 가다가 자동차와 접촉 사고가 났을 때 조차도...
나는 '헉!' 이라든가 '으악!' 이라든가...
하는 고통의 소리를 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쓰고보니 되게 기괴한 풍경이로세...)
오히려 '괜찮다'며 몸을 털고 일어나기 바빴다.
그건 평온한 분위기에 흠집을 낸 내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기도 했고,
누군가가 나를 과하게 살피는 것에 대한 불편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육체의 통증만 그랬을까.
마음의 통증 또한 나는 쉽사리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왔다.
누군가 나와 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아, 나 다른 일 하면 돼. 시간 많아."
끊임없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한테도
"괜찮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뭐~"
하며 정말 상처받은 나 보다는,
나로 인해 불편해질 관계를 살피고 상대를 살폈다.
"괜찮아. 나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불편함을 표현했을 때, 상대가 나를 보는 표정이 무서웠다.
오늘을 계기로 다시는 내 옆에 오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소중했던 내 자신을 보듬기는 커녕,
작은 상처를 더 큰 상처로 만들어 시멘트를 바르고, 또 굳혔다.
모든 것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요즘, 나는 자주 내 마음을 살핀다.
'너 많이 무서웠구나.'
'다 떠나갈까봐 겁 났구나.'
무섭다고 해도 됐는데, 울어도 괜찮았는데,
내가 놓았으면 진작 끝났을 관계들, 오래전에 포기했으면 참 편했을 텐데.
과거의 나를 생각하며 짠해지고, 또 짠해진다.
남들이 다 '그걸 아파서 어떻게 해?' 라고 말하는 왁싱을 하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마음 아팠던 거게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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