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가장 먼저 '줄여야지'생각하는 지출이 바로 '커피값'이다.
사실 커피 한 잔 안 마신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그 값 또한 만만치 않은데(요즘 저가 커피도 많긴 많지만)
현재 나의 경제사정을 고려했을 때 '커피값'만한 사치도 없지.
집에 있을 땐 집에서 해결하자, 란 생각으로
집에 구비해둔 커피머신이며, 네스프레소 머신, 원두와 커피캡슐, 드리퍼...
그들의 근황은 어떻게 되었느냐?
찬장에 가득 채워두었던 하얀 드립필터는 노랗게 변색 되어가고,
원두는 유통기한을 넘어서 방향제로 새 출발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수 많은 머신들 중 가장 만족도가 높다며 지인들에게도 추천했던 네스프레소 머신은 전깃줄에 돌돌말린 채 구석에 처박혀 있으며,
커피캡슐은 이제 그만 나를 터트려 달라고 호소하듯 한껏 배를 불리며 부풀어 올라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을 나몰라라 하고 나는 오늘도 커피를 사러 간다.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건 단순히 '커피 한 잔'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얻기 위해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을 좋아한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고 밖으로 나와 하루를 시작했다는 증거이니까)
'위잉' 그라인더 소리와 함께 터져나오는 향긋한 커피 향을 맡을 때,
내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여유'를 좋아한다.
모락모락 피어나던 연기가 '딸깍'하고 닫히는 리드에 막혀 사그라드는 순간,
그리고 내 손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그 순간의 온도를 좋아하며,
커피향과 함께 스미는 사각사각한 종이컵의 향기를 좋아한다.
커피, 라는 물질 자체보다,
만나러 갈 때의 마음, 그것을 대할 때의 향과 머금었을 때의 온도...
코 끝에 남는 여운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나에게 스밀 때,
'아 나는 커피를 마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가장먼서 '사람과의 만남을 줄이자' 라는 생각을 한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내 마음이 더 시끄럽고 상처받을까 미리 걱정하며.
굳이 누군가가 아니어도 내 곁에 있는 좋은 책, 말, 음악들이 헛헛한 내 맘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 홀로 온전히 잘 살아내고 있는가.
정답은 NO.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또 누군가를 기다린다.
사람도 커피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이라는 물리적 존재보다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갈 때의 나의 마음, 만났을 때 나의 마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기, 이야기를 나눌 때 오고 가는 대화의 온도, 손을 잡았을 때의 온기...
그 모든것들이 하나로 뭉쳐 '그 사람'을 이루고 내 마음에 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뻔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러 가듯, 커피를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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