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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오늘은 술먹지 말아야지

20230506 오늘은 정말 술 먹지 말아야지.

by nspiceno1 202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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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했지만, 아빠가 집에 아나고회를 사다 놨으므로....

사실상 회는, 술이 아니면 양껏 먹기가 힘든 편이다.

날 것이기에 몇 점 먹었을 때 느껴지는 략간의 비릿함을 어쩔 수 없달까?

이런 날 생선 특유의 비림은 탄산음료의 청량감으로 잡는 데 한계가 있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술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그제 엊그제까지 3일이나 참았는걸~~~~)

 

○ 오늘의 친구 : 오늘도 장수막걸리. 나는 지평막거리를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요즘은 어쩐지 장수의 라이트함이 좋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 안주 : 아나고 회 한 접시, 1+1으로 득템한 모짜렐라 핫도그. (이렇게나 처먹고 장수막걸리의 라이트함이 좋단다.)

 

내가 술을 먹지 말아야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연락'이었다.

평소에 내성적인 나는, 술을 먹으면 터무니 없이 '위아더월드 마인드'가 되고마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 접점이 없던 사람들에게 안부 연락을 돌리기도 하고, 그나마 지척에서 가까이 보는 사람들에게는 맥락없는 사랑고백을 하기 일쑤였다.

귀엽고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로서는 그게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없었다.

고백도 좋고 안부도 좋아. 다 좋은데,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났다는 게 창피했고, 혹여나 내가 우울하게 술을 먹다가 가슴속의 한을 누군가에게 폭발시키는 날엔, 모든 관계들이 엉망진창이 될 지도 모른다는 엄습했다.

(사실상, 나의 그런 취중 행동패턴 때문에 이 글도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할 말이 그렇게 많아? 아 그럼 여기다나 찌끄리든가!!' 하는 마인드로.

 

나는. 연락을 잘 하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연락은 관심의 표현인데, 타인에게 그런 다정한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비웃겠지만, 스무살 이후 내 꿈은 '아무리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사람' 이었다.

(예전 어디 SNS에도 끄적여 놓았던 것 같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사람'이란 말.)

그냥 멋있어 보였다. 주변에 항상 많은 사람, 많은 일들이 있어서 특별한 사람, 특정한 장소에 속박되지 않고, 연락마저 잘 닿지 않아서 모두가 기다리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

어쩌다 한 번 나타나면, 모두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사람.

 

왜 저딴게 나의 꿈이 될 수 밖에 없었느냐.

 

인간이 '떠나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 두 가지의 부류로 나뉜다면. 나는 항상 후자였다.

또한, 인생이 '기다리게 하는 일'과 '기다리는 일' 두 가지로 나뉜다면, 그 때에도 난 항상 후자였다. 누군가를 항상 기다렸던 것 같다. 어디 앞에서, 혹은 길가에서 카페에서.

참 많은 시간들을, 허무하고 하릴없이 보내고, 또 버렸다. 

 

언제부턴가 그 모든 것들을 더 이상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제는 나도 좀 버리고, 떠나고, 기다리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첫번째.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안 됐다.

더 좋아하는 쪽 (혹은 그 마음을 더 표현하는 쪽)은 약자이고, 약자는 이제껏 내가 살아왔던 삶이었다.

두번째, 나는다 괜찮아야 했다. 그리고 무던해져야 했다. 관계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소음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응하지 않는 것'이 아닌, '애초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의 무관심)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사실 나는,

싫은 건 싫다고 말 못해도 좋은 건 좋다고 말해야 하는 성격인데.

나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가 '무덤덤'이고, 내가 가장 취할 수 없는 삶의 태도가 바로 '그러려니'인데.

 

이렇게 살다보니, 내가 왜 이렇게 연기까지 해 가면서 사람을 사귀고 있나 하는 허탈함마저 든다.

심지어 나는 발연긴데. (이런 나에게 마스크를 쓰는 코시국은 어쩜 인간관계 최대 부흥기였을지도?)

 

보상인지 포상인지, 그 결과. 요즈음 내 주변엔, 내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주는 사람들이 많다. (응 뇌피셜...)

비록 발연기지만, 열심히 사회적 동물로서 열연한 나에게 주는 일종의 공로상처럼.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언젠가 홀연히 사라질 것이기에 잡을 수 없는 사람'이고 싶다.

복수심도 아니고 치기도 아니고, 그 어떤 뭣도 아닌데.

그냥, 그들의 삶 가까운 곳에서 한없이 다정하게 머무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다시 못 볼 사람이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면.

 

그럼 최소한. 내가 버려질 일은 없을 테니까.

꽤 오래. 사람들에게 기억이라도 될 테니까.

 

...

 

이런 마음을 여기다 적지 않았으면, 난 분명 인스타 스토리에 찌끄렸을 거야.

내일은, 아니 앞으로는 진짜 술 먹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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