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시간 연속으로 떠들었더니 허기짐.
허기지니까 치킨이 먹고싶어짐. 치킨이 도착했는데 마침 집에 맥주도 많음.
그래서. 그래서 결국.
○ 오늘의 친구 : 필라이트 300ml
○ 안주 : 교촌 허니콤보
1.
아침 수업 전에 커피를 사려고 동네 스타벅스에 갔는데 컨디바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율리. 내가 슈퍼바이저 시절 바리스타였고, 내가 부점장이었던 시절 수퍼바이저였던.
현재 율리는 어엿한 점장, 나는 7년 8개월간 찌그러지고 빠그러지다 못 버티고 튕겨나온 그냥, 고객.
내가 두 달 고사번이었던 탓에 율리는 나를 선배님 대하듯 예의바르게 대해주었는데,
사람이 참 이상하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고거 한 직급 위였다고... 나는 금방이라고 '엣헴' 하며 턱 밑에 달린 수염을 쓸어내릴 듯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 점장님인 그녀에게
"율리. 점장 되느라 얼마나 힘들었어요. 힘들어도 어떡해 존버존버!!" 라며 입을 놀리고 있었다.
정작 존버도 못하고, 점장도 못 해본 채 퇴사한 주제에. (심지어 최근엔 재입사까지 희망하는 주제에.)
율리... 매장 나가면서 욕했으려나.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오늘은 나갈 때 새로 산 톤업 썬크림을 바르고 나갔는데, 나. 그녀 보기에 너무 초라해보이진 않았으면.
2.
최근 내 일의 main과 sub를 다시 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시작한 일은 내 능력대비, 일한 시간대비 괜찮은 벌이를 준다.
내가 하는 일은 1:1로 사람을 만나는 일인데, 비록 돈으로 연결된 사이긴 해도, 몇 달을 두고 만나다보면 고객과 정도 들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도 꽤나 많다. (오늘도 고객이 직접 만들었다는 카스텔라를 선물받았다.)
시간을 쓰는 것도 비교적 자유롭고, 직장인들 사무실에 박혀서 일하는 시간에 맛있는 브런지를 먹고 세상 힙하고 핫하다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너무 큰 메리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하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어서 힘들었다.
셔츠를 입어야 하는 날엔 반드시 가방에 티셔츠를 챙겨다니는 난데, 이 일은. 자꾸만 내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당한 자격요건이 없다보니 자꾸 거짓말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 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하는데, 공부할 만큼 이 일을 사랑하는지 의문이었고.
결론적으로 '내가'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명백한데 도움받은 것들이 많으니 거절하지도 못하고, 거짓된 오늘을 살며 더 거짓된 미래를 이야기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이질감을 느꼈다. (이게 제일 힘들었다.)
내 팔자에 경험하기 힘들 소중한 자리를 마련해 준 누군가들에게 충분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도 모를만큼 어리진 않으므로) 오래오래 두고두고 갚아나갈 생각이다.
빠른 시일 안에 나는 다시 내 옷으로 갈아입고,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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