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지만, 4월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퇴근하고 동네까지 와준다고 하여,
내가 아무리 독하게 살기로 마음 먹었다 한들, 먹지 않고 지나칠 재간이 없었다.
○ 오늘의 친구 : 장수막걸리 한 병. (각 반 병 씩)
○ 안주 : 제일시장 소문난 족발&순대국 (사실 정확한 상호는 기억 안 남)의 곱창볶음과 순대국.
친구는 오금동에 사는데, 굳이 역삼에서 퇴근하고 내가 사는 곳 까지 와 준 것은,
이전에 방문했을 때, 제일시장 안쪽에 있는 곱창집에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곱창집이었는데 곱창 한 접시가 만 원도 안 했으며, 국수를 시켰을 때엔 세숫대야에 나왔다고 했다.
동네 사람보다 시장 내 길을 더 잘 기억하는 친구는 (항시 방향성만 있으면 된다며 여행지에서도 늘 앞장 서 주는 친구)
큰 무리 없이 이번에도 방향성만 가지고 자신에게 감동을 안겨줬던 곱창집을 발견해냈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일요일이었던지라,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근데 그보다 더, 눈에 뛰는 문구가 있었으니, 바로 '喪中(상중)'이라는 큼지막한 글씨.
맛있는 곱창과 세숫대야 국수를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잠시, 우리 둘의 마음엔 묘한 엄숙함이 스쳤다.
친구의 기억 속에 있던, 넉넉한 인심을 전해주던 주인 할머니... '혹시 할머니가...?' 하는 생각 때문에.
잠시 우뚝 멈춰서서... '아... 혹시...' '혹시..' 하면서 주변을 서성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접점이 없는 타인의 사건사고보다, 나 자신의 배고픔이 더 뼈 아프게 느껴졌으므로,
이내 발길을 돌려 차선책으로 봐 두었던 곱창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제 뭘 봤냐는 듯, 뭘 걱정했냐는 듯. 신나게 먹고 마시다가 집으로 향했다.
친구한테 그 곱창집이 너무 좋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지 벌써 일년도 더 된 것 같다.
지금. 그 가게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건, 친구의 기억속에 친절하고 풍성했던 기억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을 준다는 건 생각보다 참 큰 일이다.
그래서 결론은. 오늘 술 더 맛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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