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는 뻥.
오늘은 센터에 출근하는 순간부터, 저녁엔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오늘은 요 근래의 일상과 다르게. 수업이 많았다. 그러니... 오늘 하루 힘들었던 나를 위로해 줘야지.
○ 오늘의 친구 : 참이슬 후레쉬
○ 안주 : 쿠팡이츠에서 배달시킨, 마구로동.
4월 말은 재정적으로, 감정적으로 좀 빡센 느낌이었다.
왜냐면, 근 일주일간 주변인물 4인의 생일.
지인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일단은 일요일 우리 엄마, 그리고 이번 주중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 쌤 3인.
생일선물과 생일편지. 그것들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많이... 기가 빨린다.
그 어느 하나 대충할 수 없으므로.
가까운 지인의 생일선물에 관한 나의 철칙(까진 아니고 원칙).
첫번째, '카카오톡 선물하기'는 지양한다. (아주 오랫동안 못 만날 사이가 아니라면)
그냥 정 없어 보여서 싫다. 옛날 사람이라고 해도 좋다. 같은 돈 들인 선물인데 뭐가 나쁘냐고?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취향이 그렇다는 거다.
모름지기 선물이란, 선물이라는 물질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생일 당사자를 생각하며 어떤 선물을 할까 생각한 시간, 그 선물을 마련하러 어딘가로 움직인 시간,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따로 마련한 시간까지 모두 포함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선물을 준비할 때, 최소한 앞서 말한 세 개의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고자 한다. 누가 몰라줘도, 내가 그 정성을 아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두번째, 어차피 쓰는 돈,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하거나 새로운 의미부여가 될만한 선물을 준비한다.
내 생일은 12월 겨울이다. 그래서 대개 받는 선물들이 목도리, 장갑, 모자 등등의 방한용품이 대다수이다. 나는 엄마를 닮아 목이 답답한 것을 못 견디기 때문에 목도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손이 둔한 느낌이 제일 싫기 때문에 눈 오는 날아 아니면 장갑도 거의 끼지 않지만 뭐 그런 선물들 다 좋다. 다 나 따뜻하라고 주는 선물이니까.
근데 이제까지 받은 선물 중 가장 의아했던 것. 바로 중학교 때 친구에게서 받은, 손바닥만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었다. 아니... 이걸 왜? 도대체? 실용적이지도, 필요하지도, 그다지 예쁘지도 않았던 그 선물을 받았던 날, 나는 생각했다.
'아 선물을 받고도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구나.'
그 친구가 나에게 그다지 큰 관심이 없음을 굳이 돈들여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받는 이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진짜 개오바지만, 나는 누군가가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평소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핀다. SNS를 보고 주로 착용하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하고, 은연중에 무언갈 갖고 싶었다고 말한 경우 그것을 되도록 기억하려고 애쓴다. 과장 좀 보태서 그 사람에게 선물할 일이 생길 때 참고하려고.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 해줘도 아깝지 않을만한 사람만 챙긴다.
타인의 취향을 잘 기억한다는 것. 이건 정말 내 강점이다.
세번째, 선물만 전달하기보다는, 편지로 마음도 함께 전한다.
이건 내 자부심이기도 한데, 나는 내가 쓴 편지를 좋아한다.
편지 안엔 식상한 인사대신, 되도록이면 당사자와 나만 기억하는 에피소드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그런 이유들 때문에 나한테는 당신이 되게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나의 (좋게 말하면) 세심함, (구질구질하게 말하면) 예민함 때문인데, 뭐가 됐든 나는 좋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쓰자'라는 철직이 생겼다. 솔직히 말해서, 좀 재수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에게나 써 주기엔 내 글(편지)이 아깝다.
어떨 때엔 편지를 쓰는 것이 '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건 정말 맹세코, 깨끗한 피로감이다.
근 일주일간 네 개의 선물을 준비하고 네 편의 편지를 썼다. (물론 애정도에 따라 선물의 가격대, 편지의 분량 차이는 있다.)
앞서 말한 세 개의 과정이 좀 피곤하단 생각은 들지만, 결론적으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마치 내 생일 것 처럼.
돌이켜보면, 선물을 받고도 씁쓸했던 감정을 느낀 것은 중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매 해 나는 값비싼 향수를 선물받곤 하는데, 참... 마음이 그렇다.
'이 사람은 나를 참 아껴주는 사람인 것이 분명한데,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에.
'아... 근데 저 향수 안 좋아해요.' 라고 말하기에 나는 사회화가 비교적 잘 된 사람이기에,
선물을 받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한다. (감사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 경험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취향과 기분과, 관심을 살핀다.
다소 피곤한 과정이지만... 그건, 내가 사람을 대하는 최소한, 그리고 최대한의 배려이자 애정이다.
가끔 생각한다.
'와, 나한테도 나같은 친구 있었으면 참 좋겠다.'
술을 많이 마셨나보다.
'Text > 오늘은 술먹지 말아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0430 오늘은 정말 술 먹지 말아야지. (2) | 2023.04.30 |
---|---|
20230428 오늘은 정말 술 먹지 말아야지. (4) | 2023.04.28 |
20230426 오늘은 진짜 술 먹지 말아야지 (0) | 2023.04.26 |
20230425 오늘은 정말 술 먹지 말아야지. (0) | 2023.04.26 |
20230422 오늘은 정말 술 먹지 말아야지. (0) | 2023.04.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