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술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진짜, 잠깐 쉬고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내일 생일(신)인 엄마가 심란해 보여서, 엄마의 기분을 좀 살필 겸 동네 호프집에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가정의 행복과 평안이 가장 중요하니까.
○ 오늘의 친구 : 생맥주 두 잔
○ 맛 : 생맥주자나. 말모말모.
○ 안주 : 염지가 아주 씨게 된, 튀김옷이 얆은 후라이드 치킨. (아, 사진 찍어올걸.)
사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어제부터였다.
어제 오후 8시 경. 그러니까 내가 광장시장에서 신나게 부어라마셔라 하던 그 시점에, 언니한테서 카톡이 왔다.
카톡내용을 확인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신나게 대구 매운탕 국물을 들이켰는데 식도가 아닌 심부가 칼칼해짐을 느꼈다.
언니는,
'기리니(형부)랑 싸웠는데, 그런저런 스트레스로 온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엄마가 그걸 보고 마음 아프다며 울면서 집에 갔다. 일요일 엄마 생일에도 집에 오지 말라고 하던데, 난 괜찮은데 엄마가 속상해해서 걱정이다. 너가 엄마 위로 좀 잘 해줘라.' 라고 했다.
엄마는,
'타고나길 용량이 작은(언니를 진맥한 모 한의사님의 표현에 따르자면) 언니가 애 둘 키우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몸이 저렇게까지 될까 싶어서 불쌍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하루종일 신경질이 났다.' 고 했다.
나는 말했다.
'엄마. 언니한테 그만 잘 해줘. 그리고 각자의 힘듦건 각자 좀 해결하자' 라고.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엄마, 나도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면 다 잘 될 것같고 기분이 좋은데, 또 어느 날 아침엔 한없이 우울하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근데 그건 내가 누구한테 투정부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내가 이겨내야지.
언니도 그래. 엄마가 왜 그렇게까지 희생하고 걱정해야되는데? 할만큼 했잖아. 나머지는 언니가 이겨내야 하는 거야. 언니가 불쌍해? 아니? 나는 엄마가 더 불쌍한데?
언니네 집 걱정 좀 그만 하고 그만 좀 신경 써.
언니 한번씩 이렇게 연락와서 '자기도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미안하다 속상하다' 하는데, 난 이해가 안 돼. 그렇게 후회할 바에 평소에 말 한마디라도 엄마한테 예쁘게 하겠어.
나보고 엄마를 위로하라는데, 엄마가 아무 티 안 내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할 수 있으며 그걸 왜 내가 해야되는데?
다들 어른이 아닌 것 같아.
제발 남 걱정 하지말고, 남한테 기대지도 말고 각자의 고통과 힘듦은 각자 해결했으면 좋겠어.
나 살기도 빠듯한 나는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엄마한테 이런 말을 헸던 것 같다.
"사람들이 다 자기자신만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건, 엄마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인정하는 말이기도 했고, 그 맹목적인 희생에 질렸다는 말이기도 했던 것 같다.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희생한다는 것은 어떤 선을 넘어서면,
상대를 지치게도 하고 죄책감에 빠지게도 하는 아이러니인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언니에 대한 희생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언니도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것은.
둘 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각자, 좀, 알아서, 살게.
가만 보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하는 사람만 많아.
이러니 내가 술을 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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