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오전까진 생각을 했지만, 오후에 일이 너무 힘들었다.
주 초에 이를 좀 당겨하는게 마음이 편하니까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센터에서 내가 제일 늦게까지 수업했다... 안 먹을 수 없지... 술...
○ 오늘의 친구 : 장수막걸리 2/3병 (아래 가라앉은 것들은 먹지 않으니까.)
○ 안주 : 소금구이막창 (쿠팡이츠 와우회원 10%할인의 날이라 시켜야만 했음)
나는 요즘 드라마와 책에서 '진심어린 사과의 중요성'에 대해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내가 최근에 정주행한 드라마 <퀸메이커> 속 황도희(김희애 分)는 복수의 과정에서 천하의 나쁜 새끼 백재민(류수영 分)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게 잘못을 했으면 담백하게 사과를 했어야지, 왜 함부로 대가를 지불하려 들어."
지극히도 온당하고 이치에 맞는 말이다.
잘못을 했으면 그 다음은 무조건 사과가 뒤따라야지, 대가고 지랄이고 다 사과 이후의 문제일 뿐이다.
최근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김승호 회장의 책 <김밥파는 CEO>에서는 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실수에 대해 사과하되 변명은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게 실수를 만회하는 방법이다."
이런 대사와 구절들이 최근 내 머리에 박혀서 일까.
지난 주말에 카페에서 일을 하던 도중, 물건을 꺼내다가 누군가의 립밤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깜짝 놀라 주워들고 보니, 딱딱한 바닥에 떨어진 탓에 립밤의 케이스는 아주 선명하게 금이 가 있었다.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거 립밤 비싼 것도 아닌데 요 앞 올리브 영에 가서 똑같은 거 하나 사다 놓고 메모 남겨?'
'아니지. 어차피 여기 들락거리는 직원이 한 둘이 아닌데, 그냥 내가 안 한 척 생까버리면 그만이잖아.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식의 흐름이 새카만 쪽으로 흘러들어갈 즈음,
문득 그 중 황도희의 대사와 김승호 회장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담백한 사과'와 '진심을 전달하는 일'.
그 날, 나는 퇴근 전에 노란 포스트잍을 한 장 뜯어 메모를 남겼다.
'물건을 정리하다 립밤을 떨어뜨렸어요.
케이스가 금이 갔더라구요. 정말 죄송해요...ㅠㅠ'
적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똑같은 거 제가 사다드릴게요...' 라는 말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립밤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혜연님, 그거 립밤 뚜껑 원래 깨져있었어요 ㅋㅋㅋㅋ'
메시지를 보자마자 마음이 한결 놓였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는 생가게.
하지만 뒤 이어 전송된 메시지를 보며, 나는 마음이 놓인 것을 넘어, 말 못할 뿌듯함과 안도감 마저 느꼈다.
립밤 주인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그래도 메시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만약 케이스가 부서진 걸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면, 당사자야 (원래 금이 가 있었던 탓에) 아무것도 몰랐겠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불편했을 것이다. 소지품에 흉을 만든 미안함과, 뭔가를 숨기도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또한, '제가 망가뜨렸는데 하나 사 드릴게요!' 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면, 그 또한 서로 불편해지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립밤 주인은, '아니 사과를 먼저 해야지 새로 사 주면 다야?'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나 또한 '아, 좀 조심할 걸, 서두르다가 괜히 돈만 날렸네.' 하는 찝찝함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가장 먼저 '사과'를 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와 마음의 응어리가 생기도록 하는 일을 막았고, 함꼐 일하는 동료로부터는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신뢰감까지 얻었으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옳은 선택을 했다'는 자존감까지 채워 넣게 되었다.
'말 한 마디로 천냥빚을 값는다는 말' (우리 엄마가 만날 하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 제목으로까지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강조되는 것도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애매할 땐 뭐다?
정석(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합니다, 처럼)대로 하자.
갑자기 술 먹고 생각난. 립밤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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