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에갈래? 시장갈래? 언니네 갈래?
아니? 아니... 아니이!! 아니라고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뭐든 거절하기 바쁜 둘째 딸은 바로 나.
토요일 저녁.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빠가 '내일 장미축제나 가자' 했을 때,
평소의 나라면 "그 사람 많은 델 왜 가" 하면서 당연히 거절했어야 했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은 거절이 안 됐다. '아니'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요 한 주가 너무 힘들었고. 그냥 나도. 주말같은 주말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일요일 점심. 우리 (한시적) 삼총사(아빠, 엄마, 나)은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함께 움직였다.
카카오 택시를 부른 우리 셋은, 아빠가 카카오택시를 처음 타본 탓에 결제를 하려고 움찍 했을 때 빼곤,
늘 그랬던 것처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중화역.
내려서도 우리 (한시적) 삼총사는 한참을 걸어 장미축제 현장에 도착했다.
"아니이~ 택시를 탔으면 그 앞에 내려달라고 하지 왜 굳이 걸어가냐고요~~" 징징거리는 나에게
"운동하고 좋지" 라며 대꾸하는 아빠.
"장미가 아직 덜 핀 것 같다"는 엄마의 말에,
"이런 데 장미 보러 오냐~ 이 사람아. 그냥 먹고 놀려고 오는 거지~" 하며 신이 난 아빠.
천막과 파라솔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임시 부스에서 아빠는 오만원짜리를 꺼내며
"막걸리 두병, 홍어무침, 부추전!"을 외쳤는데, 어쩐지 그 모습이 예전에 어린 언니와 나를 데리고 어린이 대공웠에 갔을 때의, 젊었던 아빠의 모습 같아서 나는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내 기억속에 우리 아빤 그다지 다정한 아빠는 아니었는데, 다혈질에 무뚝뚝했던 그 시절의 아빤, 없는 살림에 주말이면 그렇게 딸들 손을 잡고 대공원이며, 아차산이며... 다니곤 했었다.)
어린 딸에게 써니텐을 사주던 아빠는 이제 다 크다 못해 늙어가는 딸을 위해 추가로 막걸리 한 병까지 더 주문해 주문한다.
엄마는 빈 자리를 찾느라 바쁘고, 아쉽게도 파라솔 달린 자리를 찾지 못한 엄마는 족히 10년은 썼을 양산을 펼치며 우리 셋의 의자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마침내 주문했던 음식이 나오고, 우리 셋은 녹색 중랑천을 앞에 끼고 침묵과 대화를 적절히 배합해 나갔다.
"우리끼리 이렇게 강 보러 나온 게 처음인가?" 하는 아빠의 말을 시작으로,
"그러게, 식구가 셋이라도 같이 나오기가 어렵네." 하는 엄마의 말이 이어지고,
이 평온함과 별거 아닌 행복을 인지하기도 낯간지러운 나는 그저 "좋네."하고 말았다.
그리고. 정말 좋았다.
매일매일을 누군가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모자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데.
엄마니까. 그리고 아빠니까.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서 이 행복을 감당하기만 하면 그만이란 사실이, 좋았다.
여른여섯인 딸 먹기 좋으라고 부추전을 찢어주는 엄마와
'편육도 맛있겠다'는 말에 후다다닥 달려가서 만원에 열 다섯조각 정도 들어있는 황금편육 한 접시를 들고오며, 어서 먹으라는 아빠.
아마 여섯살 때도, 열여섯살 때도, 스물여섯 때도, 지금도. 다 같은 모습이겠지.
술상을 접고 사람들 틈에 섞여 걸으면서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수 많은 인파와 소음. 그 사이에서 마음은 한없이 차분해졌다.
내가 그렇게나 밖에서 찾으려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찾지 못했던 그 행복은.
이렇게 내 안에 다 있었던 걸까.
내가 이십대 초반에 가장 좋아했던 영화, 공효진 주연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영화 말미의 대사가 떠오른다.
"다 네 옆에 있어."
엄마 아빠. 나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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