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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자르 그라시안 [사람을 얻는 지혜]를 읽고.

by nspiceno1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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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지혜 표지

 

타이틀이 모두 삶 하나, 하나의 좌우명이어도 손색이 없을.

 

고마운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지나친 호의는 오히려 짐이 된다.
경솔하게 믿지말고, 함부로 의심하지 마라.
혼자 있을 때도 몸가짐을 조심하라.
윗 사람의 비밀은 듣지도, 말하지도 마라.

 

 

이 주옥같은 문장들은 책에서 전하는 짧은 조언들의 타이틀 들이다. 이런 조언만 해도 무려 269개에 이른다. 

처음에 내가 가장 압도당한 내용은 이것이었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고마워하기보다 기대하고 의지하게 말들어라."

그리고

"세상의 어떤 일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실력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마치 지금 나의 상황과 어울리는 말이어서 그랬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실력도, 매력도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빚진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 그 사람을 한없이 불편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의심. 

처음 한 두 챕터의 이렇게, 내 자신의 뼈를 사정없이 때리는 이 기분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것이다.

 

 

 

 

'격정'에 관한 다스림.

 

한없이 감정적이고, 순간의 기분으로 좋은 관계를들 망친 경험이 다수인 나로서는, 이 책의 저자가 매 챕터마다 강조하는 '격정'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깊지 않을 수 없었다.

"쉽게 격정에 휩쓸리는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격정이 이성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격정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격정에 휩쓸리면 이성과 판단력이 흐려진다. 격정에 휩쓸린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 명성이 위태로워진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다스린다."

"격정을 잠재우려면 먼저 자신이 격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감정을 지배하겠다고 단호하게 마음 먹을으로써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단지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분노를 급격하게 완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나는 현재 이 책을 읽음으로써, 현재 나에게 닥친 부산스러운 일들을 참을성 있게 대처할 수 있었다.

작가는 분명, '격정'을 다스리지 못해 피 본 경험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뜬구름 잡기.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까지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분명  비교적 쉽게 풀이 된(직접적인 사례가 공유된) 자기계발 서적을 열 권 이상 읽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니까 너무 좋은 명언들의 향연인데... 그냥 다 명언이다... (뒤로 갈수록 더더욱!)

이걸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까 싶은.... 예를들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지나친 기대가 아니라 적당한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멋진 일이다' 라든가...

'언제나 당당하고 여유있는 태도로 어떤 엄청난 일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 라든가 또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존경과 이익 모두를 얻을 수 있다' 등등의 뻔한 말들.

거짓말 조금 보태, 269개의 챕터 중, 220개 정도가 이러한 패턴이다. 이건 궤변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을 얻는 지혜' 치고는 비관적인 결말.

 

이 책의 마무리 챕터의 제목을 보고,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공하는 것이 최고의 복수' 라니...

아니, 사람을 얻는 지혜라는 책을 찾아 본 사람은 필시, 사람을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일 테고, 그런 의미에서 '성공'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너에게로 온다... 정도의 의미라고 한다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겠지만, 이게 맞는 귀결인가 싶다.

'성공한 사람들에겐 알아서 사람이 따른다'도 아니고, '성공이 최고의 복수'라니..

나는 지금까지 복수하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있었나? 하는 허탈함마저 든다.이러이

이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전반적으로 뿌리깊지만 다소 유연해보이는 '비관주의'의 탈을 쓰고 있다.

대부분이 자기계발 서적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반면,

이 책은 '실패가 없는 삶을 살아라' '함부로 도전하지 말아라' '이러이러한 사람과는 그냥 멀어져라'

'열등한 것은 우월한 것을 어차피 이길 수 없다' 등등의 멘트로 끊임없이 독자를 가스라이팅 하며

'(확실한 담보다 없다면 그냥)현재에 안주하는 삶'을 권유한다.

 

이런 결말을 기대하고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

더군다나 '사람을 얻는 지혜' 라는 말끔한 제목의 탈을 쓰고.

'자기 계발서적'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는 절대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감의 뽕에 너무 차오른다거나,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타인에게 상처주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정도 권유는 하겠지만...

솔직히 이렇게 우화도 아닌, 둘러둘러 산등성이를 두바퀴 반은 돌아가는 듯한 이 책을 과연...

현대의 어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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