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살아있을지도 몰라. [맨 온 파이어]

by nspiceno1 2023. 1. 5.
반응형

 

맨 온 파이어 (2004)

Director : 토니 스콧

CAST : 덴젤 워싱턴, 다코타 패닝

 

누가 그랬더라. 세상엔 울어서 창피한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는데,

울어서 창피하지 않았던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된다고.

세상에. 이런 영화를 보고, 이런 류의 감정을 느끼게 될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정말 신기했던 것, 영화를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델마와 루이스'가 느껴진다 싶었는데,

후에 찾아보니 이 영화의 감독인 토니 스콧은 <델마와 루이스> 리를리 스콧의 동생이란다.

이야기 구조가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면서 우연이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니...

은근 내가 대견스러운데? (뭐래)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내가 원빈이 주연한 <아저씨>를 먼저봐서 였는지, <아저씨> 생각도 났고,

앞서 말했듯이 이미지를 제시하는 구도나 화면에서는 <델마와 루이스>도 생각났고,

지독한 폭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데에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떠올랐다.

과거 암살자로 일하며 수 많은 사람을 죽여왔던 크리시. 그의 상태는 현재 '멘붕' 그 자체다.

아이의 경호 일을 제안하는 레이에게 그는 말한다.

'지금은 시체 하나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 라고.

 

 

'시체'를 지킬 여력도 없다던 크리시는 운명처럼 한 자동차 사업가의 딸 피타를 만나게 된다.

피타는 시종일관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피타를 대하지만, 피타는 크리시와 친구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의 장르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아이는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또 어른스럽다. (다코타 패닝은 더더더!!)

 

 

사업상 바쁜 피타의 부모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피타를 돌보는 크리시.

크리시는 피타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크리시의 도움으로 피타는 수영 대회에서 1등을 하고, 그 보답으로 크리시에게

'유다' 목걸이(신념을 잃은 수호자 의미)를 선물한다. 

선물을 받은 크리시의 표정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보는 사람까지 뭉클해진다.

 

 

둘의 우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언제 깨질지 몰라 불안하던 영화의 흐름은

러닝타임의 50'분 지점에서 격하게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피타가 피아노 교습을 받는 사이 총격전이 벌어진 것.

이 범죄는 부패한 경찰과 전문 번죄자들이 연루되어 있는 사건으로, 상황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크리시는 큰 부상을 입고 설상가상으로 피타는 유괴된다.

범죄자들의 협박을 받은 피타의 부모는 거액을 준비해 약속 장소로 나가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협상금을 가로채는 바람에 피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부상에서 회복한 크리시는, 피타의 죽음을 알게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한다.

그의 작업이란, '피타의 유괴와 관련해 이득을 취한 자'를 모두 죽여버리는 것.

그는 차근차근 일을 진행시켜 간다. '목소리'로 통하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아이를 납치하고, 전달하고, 지시하고, 돈을 가로채고 했던,

모든 과정에 연루됐던 인물들을 찾아 고통을 주고, 처참한 최후를 선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크리시틑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피타의 유괴는, 사업 자금 등의 문제로 괴로워하던 피타의 아빠가 변호사와 짜고

배후에 서서 자신의 딸 피타의 유괴를 지시한 것.

어린 아이의 유괴가 만연하던 당신 멕시코의 사정상 피타는 어린이를 유괴에 관한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피타의 아빠는 자신의 부인도 모르게 끔찍한 범죄를 계획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어차피 짜고치는 고스톱을 한 생각이었다면 실제로

계획을 수행하는 인물들까지 그가 포섭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뭘 믿고, 그 엄청난 조직이 연루된 유괴사건에 자신의 딸을 끌어들이 생각을 한 걸까?

무튼, 그는 결국 죄책감에 자살한다. 아니, 크리시가 그에게 자살을 권유한다.

 

크리시는 기자의 도움을 받아 '목소리'라 불리는 사내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와 목숨을 건 협상을 벌인 끝에, 사실 피타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게된다. 모든 용의자들을 죽이는 것이 목표였던 크리시의 계획은 수정된다.

자신의 목숨을 그들에게 주는 대신, 피타를 구하는 것.

 

여기까지 오는 동안 '혹시 살아있을지도 몰라' 작은 희망을 가졌던 것이

마침내 이루어져서 였을까, 차에서 내리는 꼬맹이를 보는 순간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이렇게 돌아오기 위해...

 

 

엄마, 아빠도 아닌. '크리시!'라는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소녀의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정말 내가 이제까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모든 순간들 중

이 순간이 최고의 감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미 이와 비슷한 류의 영화를 몇 번 접했음에도, 역시 좋은 작품은

그 의미가 바라지 않는가보다.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심지어 실화라고 한다.

별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소설을 볼까도 싶었지만, 소설에서는 아이가 죽는다기에... 그냥 패쓰.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과 환상, 현실의 교차... 는 몰입을 어느정도

방해할 수준까지 거슬리는 건 사실이다.

환상과 악몽을 그렇다 치고, 현재의 이야기까지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가...

뭐가 있었을까. 그런 화면의 흐름만 아니었다면 완벽한 영화.

반응형

댓글